BOOK/BL/PAST

[연야린] 오노도와가

RELL 2017. 10. 11. 21:14

환상초중단편선 - 오노도와가   

Younyarin

030213

★★★☆



 어떨때는 오싹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느꼈던 것은 '환상' 이란말 그 자체였다. 총 네가지의 제각각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정월초하루' 그리고 가장 사로잡혔으며 이 단편집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은 '오노도와가'였다.



오노도와가

 

 연아린님의 꿈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 이야기는 안개에 둘러싸인 인디언들의 거주구역에서 히치하이킹한 인디언 청년 제네시를 태우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선우의 하룻밤이다. 제네시가 풀어놓은 이야기.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는 신의 대리자이지만, 인간인,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번민에 싸이는 세고예워터의 이야기는 한없이 침잠하게 만들었다. 글을 다 읽은 후 반추해보면 이 이야기는 결국 치정살인극일뿐이지만, 그 분위기와 문체와 그들의 대화에 나까지 휩싸여서 책을 덮고 나서도 정신을 못차렸다. 세고예워터와 하세노워스의 이야기는 그 끝이 명확하지 않게 끝난다. 

 당연하게도 세고예워터는 제네시 자신이었고, 왜 그날 밤 선우의 차를 타 그 이야기를 들려줬는지 의문을 남긴 채 선우의 차에서 내려 다시 안개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였던 주유소에 도착한 선우는 그가 미래를 봤고, 또한 그날 밤 도로를 달리며 한대의 차도 보지 못했으며 안개가 없는 맑은 날씨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가장 여운이 오래 남으면서도 신비롭고, 꿈속을 걷는듯 몽환적이고 읽는 내내 안개쏙에 싸여 신들의 산으로 향하는 끝없는 다리를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분명 중심스토리가 있음에도 세고예워터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또한 이야기를 전달했던 제네시의 시작과 끝도 몽환적이라 그냥 분위기에 취하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하세노워스×세고예워터)


정월초하루


 정말 끝장나는 편집이 아닐 수 없다. 흥미를 단박에 끌어들일 만한 소재를 첫번째에 그리고 독자가 곱씹을 수 있도록 가장 개성이 잘 드러나고 여운이 남는 글을 마지막에 넣으시다니.

 여튼, 그렇게 흥미를 끌고 재미있게 본 정월초하루의 키워드는 '재회'와 '귀신'이다. 어린시절 상큼한 어린이었던 이준은 시골 본가에 내려갔다가 백부의 사생아인 승영을 보게 된다. 야생고양이 같던 승영이 안쓰럽고 귀여웠던 이준은 그에게 정을 주고, 가까이 가는데 성공해 가엾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자게 되었다.

 자기 전, 이준의 아버지는 정월초하루에 밖에 있는 신발들을 신어보고 맞는 신발을 신고 간다는 귀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승영과 함께 잠들었던 이준은 밖에서 신발을 가져가려는 기척을 느낀다. 이준은 승영의 신발을 가져가려던 손을 필사적으로 막고 자신의 한쪽 신발을 내어준다. 귀신에게 왼손이 잡혔던 그 끔찍했던 밤이 지나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 사건에 대해 승영은 자신이 이준의 신발을 숨기고 장난쳤을 뿐이라 했다. 하지만 기절한 이준과 푸르게 변해버린 왼손을 본 어른들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차에 태워진 이준의 뒤로 승영이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후, 15년간 정월초하루만 되면 심해지는 왼손의 통증과 함께 장갑을 벗지 못하는 생활을 하게 된 이준은 부모의 이혼으로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다 백모님의 죽음으로 찾아간 본가에서 훤칠하게 자라버린 승영과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승영이 숨겨놓은 자신의 어릴적 그 운동화 한짝을 발견해 가지고 올라오고, 승영이 그런 이준의 뒤를 따라 올라와선 신발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귀신은 매년 나머지 한짝의 신발을 찾기 위해 나타났었고, 승영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거였다.

 호러로 쭉 전환되던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운동화를 찾고 귀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한 둘의 몸부림으로 절정을 맞았다가, 사실은 그 귀신은 '양괭이'라는 어린아이 귀신으로써 단지 신발이 갖고 싶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 이준이 양괭이 굴에 들어갔다 나옴으로써 팔도 낫고 종결된다.

 오싹오싹하게 만들며 또한 재회한 승영과의 관계까지 흥미진진했다. 무지 재미있었음.

(성승영×성이준)


08.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