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BL/PAST

[연야린] 에빌

RELL 2017. 10. 11. 21:17

환상초중단편선 - 에빌  

Younyarin

2007

★★★★★



에빌


 이야기는 곱게자란 풋내기 영국학자가 모험에 대한 동경으로 밀수입선 '메르쿠리우스 호'를 타면서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 식인사자로 유명했던 '에빌'을 미국의 부호에게 밀수입한다는 그 배에는 묘한 푸른눈을 가진 정체불명의 인디안청년 레오파드, 에빌을 잡은 당사자인 교활한 사냥꾼 카가론과 늙은 의사 쿠퍼. 부선장 허시 등등이 타고 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서 그 배에 탄 오비시디안은 여정이 진행될수록 evil이란 이름을 가진 사자 때문인지는 모라도 안좋은 느낌을 받게된다. 그러다 배가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본격적으로 사람들 마음속에서의 'evil'과 사자 '에빌'이 날뛰게 시작한다.

 사람들의 심리변화와, 카가론의 진짜 속셈과, 오비시디안과 레오파드와의 묘한 관계들이 진전되면서 소설은 절정을 맞고 에빌이 카가론을 비롯한 선원들을 길동무삼아 데려감으로써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마무리는 그 기이하며 신비하고 위험한 체험을 한 오비안의 편지를 읽은 '그' 찰스 다윈이 감화되어 세계사에 점을찍을 항해를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다윈의 답장에서 미루어보면 오비안은 새로운 대륙에서 레오파드. 아니 미네완카와 소중한 아이 짐바르와 함께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는 모양이다.


 풋내기의 어이없는 모험여행이 제재겠지만, 연야린님은 소설을 관통하는 두가지의 '에빌'을 이용해, 줄거리만 읽으면 모험활극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이 글을 또 '환상'이란 글자가 들어가게 만들었다. '사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사건을 던지면서 그 저변의 심리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분은 그런 묘사가 특기라도 봐도 좋을 분. 환상초중단편선 첫권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 글은 어디에 내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한 끝내주는 작품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친 것이 없다. 캐릭터성이나 그들사이의 관계까지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이 장르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로맨스도 소설의 전개에 맞춰 느릿하고 은밀하게 진행된다. 분위기와 전개 모든 것이 같이 박자를 맞춰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의 마무리까지 '그'를 내세워 임팩트있고 완성도 있으며 에필로그까지 한방에 정리하셨다.

 책을 읽는 중에 흥미를 끈 것은 곳곳에 비유된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과 소재와 에피소드들이다. 반복해서 읽었던 것인만큼 비유들이 확실하고 센스있게 다가왔으며 적재적소에서 사용된 그것들은 이 소설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 몫 단단히 했다.

(레오파드×오비시디안)



플러버


 4년전, 피해자들의 눈알을 도려내고 그 안에 플러버를 넣어놓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을 조사하던 이는 엘리트지만 누구보다 앞서 현장에서 뛰는 능력있는 남자 도진무 반장. 그러나 범행이 일어나는 현장을 알아내 급습했던 그는 무슨 이유인지 스스로 방화를 한 뒤 사건을 은폐하고는, 범인이 죽었다고 말하며 화상입은 채 밖에 나와 쓰러진다. 그 때 쓰러지는 그를 받았던 유재하 경사는 4년 뒤, 플러버 사건이 재현되자 실마리를 얻기위해, 진실을 찾기 위해, 도진무를 찾아간다. 그는 그 사건이후로 충격을 받아 알콜중독자에 광장공포증환자로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진무는 약에 취한 채로 자신앞에 나타난 재하를 다짜고짜 덮친다. 반강제였음에도 묘한태도를 보이는 재하에게 흔들렸던 진무는 그와 같이 다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재하가 발로뛰고, 진무가 조사한 것을 합쳐 그들은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수사 와중에 왜인지 모르게 조용하고 단아하면서도 어느 때는 요부처럼 구는 재하에게 속절없이 끌리는 진무., 또한 그런 진무에게 존경과 애정을 보이는 재하의 관계는 알수없는 미묘함으로 전개되어간다.


 결국 일련의 플러버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아이들을 입양해 스너프 비디오를 찍던 개자식들이었고, 범인은 그 복수극을 펼치는 중이라는 진실이 드러난다. 범인은 스너프 희생자 중 하나를 사랑했던 최씨임을 재하가 밝혀내고, 그것을 진무의 공으로 돌리는 듯 하면서 사건은 종결된다. 

 하지만 진무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구조되었을 때 재하를 처음 만났던 게 아니었다. 묘하게 낯이 익은 단정한 얼굴은 4년 전 자신이 급습했던 범행 현장에서, 스너프를 찍었던 놈들에게 그 영상을 들이대며 단죄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동시에 그 필름에 비쳐지고 있던 소년의 얼굴이었다.  당시 진무는 가해자가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가해자인 사건의 충격적인 결말에 손을 쓰지 못하고 범인을 잡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개자식이었던 최씨를 범인으로 위장한 재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된 진무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진무는 그런 재하를 다시 한 번 감싸주기로 한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이면을 진정으로 보게 되 더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문체와 두 사람의 심리묘사와 긴장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에 그야말로 또 감탄했다 에빌을 재미있게 봐서 그 다음은 조금 덜하겠지 했는데 연타석으로 홈런치셨음. 게다가 이쪽은 소재도 취향. 전개도 취향. 중간에 복선처럼 흘린 말들속에 숨겨진 힌트들. 센스있게 과자를 줍듯이 이끌려 알아낸 비밀. 게다가 모든 것이 절정에서 드러난 와중의 결말까지 말도못하게 취향이었다. 

 그리고 읽는 나는 연야린님의 손에서 잘 놀아났다. 전체적으로 재하는 존경하는 선배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위한 건실하고 바른 청년으로 묘사된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에게 힌트를 준다. 그 단정한 청년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묘한 웃음이라든지 말이다. 사실 재하 본인은 별로 자신에 대해 숨기질 않았다. 연야린님이 재하=플러버가 아닌, 철저히 별개의 사건을 쫓는 외부인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재하를 이끌었기에 중간중간 의심하면서도 작가에게 질질 끌려갈 수 밖에 없었음ㅋㅋ

(도진무×유재하)



베더웨더의 마녀


 아 심장이 뛰어서 미치겠다. 누구에게 반했다거나 모에할만한 상황이 나와서가 아니다. 뭔가 다 읽고 났더니 막 심장이 무겁게 뛴다. 오스카 와일드의 그 도리안으로 만든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는데 어째서일까?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의 작품들과 절대로 뒤지지않는 수작이라는 것.

(도리안 그레이×에즈라 고든)


08.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