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BL/PAST

[악] 만냥금

RELL 2017. 10. 11. 21:22

만냥금

040606

★★★★



 '오랜 사랑에 답하다'라는 꽃말을 꽃. 그리고 이원은 그 꽃처럼 절절한 짝사랑을 한다. 상대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15세 시골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전학온 고등학교에서 재회했을 때, 그리고 같은 학교의 캠퍼스에서 만났을 때까지 줄곧 이원은 결심과는 다르게 계속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린다. 이 끝나지 않을 짝사랑은 가슴아픈 독백으로 애절하게 이어지다가, 결국 마지막에 잃었다고 생각하고, 생명마저 위독하고 나서야 겨우 보답받게 된다.


 짝사랑물을 워낙 좋아하는 터라 폭 빠져들어서 봤다. 짝사랑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힘들어하는 이원이 안쓰럽기도 했으나. 태원은 몰랐을 뿐 이 바닥에 흔한 나쁜 새끼가 아니었다. 그저 본인도 짝사랑을 하고 있기에 이원을 볼 여유가 나지 않았을 뿐, 잘생기고 바른 호청년이었음. 이 때문에 후회공이라도 궤가 달랐던게 독특하다.


 짝사랑물답게 이원의 말들 중에서도 고백씬이 절절했음. 좋아하는 꽃들을 주춤주춤 소심하고 조심스레 나열하는 그 장면말이다. 나중에 태원이 이원이 아프다는 소식과 함께 꽃말의 의미를 듣게 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그 고백장면ㅠㅠ

 글은 이원이 수술을 마친 후 시골로 돌아가, 선우와 정리하고 사랑을 하러 이원을 찾아온 태원의 재회에서 끝난다. 제목과 꽃말에 답긴 의미를 볼 때 이들의 관계가 시작되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끝난 게 적절했던 것 같음.

 너무 절절해서 죽을 것 같이 공감하거나 이런 게 아니었음에도 그냥 보고 있는데 참 좋았다.

(강태원×이원)


09.01.27





 p452


 꽃집 주인의 말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건 강태원의 시선에 다른 쪽 페이지의 구석에 작게 찍혀져 있는 '창포'라는 글자가 닿았을, 그 순간이었다.

'난 창포를 좋아해. 그게 잎은 진짜 별로지만 꽃이 굉장히 아름답거든. 사, 사실 잎하고 줄기만 보면 이게 꽃이냐! 파 아냐, 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 생긴 놈이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던 이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말이지 창포는 마치 파처럼 못생긴 잎이었다. 그러나 강태원은 그 사진에 미처 눈을 줄 수가 없었다. 그 아래에 있는 작은 별 모양 말 상자 안에 쓰인 꽃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꽃말: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 있어요.

"태원아, 왜 그래?"

"정말 얼굴색이 안 좋구만? 이봐, 준영 군 친구. 괜찮아?"

 꽃집 주인은 강태원의 눈앞에 손을 몇 번 흔들어보며 물었다.

 다음 순간이었다.

 강태원은 갑자기 그 책을 붙잡고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틀레야. 이 놈은 빨간색도 있고 하얀색도 있는데 아주 청초한 느낌이지. 본 적 있냐?'

 그리고 강태원은 마치 나팔꽃처럼 화사하게 입을 벌린 꽃의 사진을 찾아내었다.

[꽃말: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해바라기. 노란색의, 늘 한곳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해바라기에 관한 신화도 굉장히 재미있어'

 노란색 꽃의 아래에 씌여져 있는 글자.

[당신을 바라봅니다]

 강태원은 가슴이 타는 듯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냉이. 그리고 마거리트도 좋아한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마음 속에 감추어둔 사랑을]

 강태원은 꽃 사진이 든 잡지를 저도 모르게 꽈악 움켜쥐었다. 그대로 찢어버릴 것처럼 그렇게 세게 움켜쥐었다. 꽃집 주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그런 강태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선우만이 일그러진 태원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낄 뿐이었다.

'팬지'

[나를 생각해 주세요]

'크로커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꽃 사이에서 부드럽게 웃던 그 얼굴이 기억났다.

'그리고..., ... 그리고, 꽃고비'

 강태원은 꽃고비의 사진이 든 잡지의 안쪽을 잡고 이를 악물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내게 와 주세요]

 순간, 잡지 위로 투둑-하고 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강태원은 다음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괴롭게 일그러진 채 울던 이원의 얼굴이 생각났다.


 ... 그러니 ........ 내게로 와 주세요.


 이원이 하고 싶었던 것은, 그 한마디였다.

 그리고 강태원은, 지금에서야 그 한마디를 깨닫고 있었다.